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송 전투 (문단 편집) == 작전계획 == [[독립기갑연대]]장 유흥수 [[대령]]은 7월 25일에 본대에 앞서 진보에 이르자, 연대 지휘소를 진보 초등학교에 설치하였다. 이때, 동 연대는 제3사단(사단장 준장 이준식)과는 물론, 육군본부나 좌 인접한 제1군단(군단장 소장 김홍일)과도 유무선이 단절되어 있었다.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연대장 유흥수 대령은 이곳에서 공비를 격멸중인 강원경찰 제5대대장 김인호 총경으로부터 당면한 상황을 청취 하였다. 그의 보고에 따르면 『26일 아침부터 1개 연대규모의 적이 [[영양군]]으로부터 남침하기 시작하였으므로, 대대는 407고지(진보 동북쪽 2km)에서 이를 맞아 일전을 벌였으나, 중과부적으로 2km 남쪽의 339고지를 점령하여 방어하고 있으며, 한편 원전동(진보 동남쪽 12km)에서 34번 도로(진보-영덕간)를 경계하고 있던 제 3중대는 이날, 1개 대대규모의 적에게 공격당하여 진보로 철수하고 있는 중이다.』라는 것이며, 또한 『대대의 후방인 이전동(주왕산 남쪽 4km) 부근에 청송을 두 번이나 습격한 제766 부대의 일부병력과 공비 등 도합 1,400명이 준동하고 있다.』라는 것이다. 연대장은 당면한 정황이 [[대한민국 육군본부]]의 작명을 받을 때 『적은 장비가 취약한 공비』라고 제보 받은 것과는 달리 완전 편성된 정규군임을 알게 되었다. 이에 따라 [[연대(군대)|연대]]는 26일 23:00에 각각 저지 진지를 점령하고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